<환상소곡집 | 幻想小曲集 op.3- Monster> 메시지 | メッセージ
日本語訳 >>
그동안 여러 편의 앨범 소개글을 써왔습니다.
이번에는 형태가 없는 음악을 문자로 형언해 보려 애쓰는 대신, 다섯 편의 긴 고백을 남겨두기로 합니다.
이 글은 괴물과 새와 나비로 이어지는 변모와 재탄생, 그리고 자기 이해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섯 편의 글은 각 장마다 개별로 읽어도 문제가 없고, 연결해서 읽을 때는 서사의 구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소개문은 노래를 듣기 전에 노래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통로 같은 역할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읽지 않으셔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예술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아래의 문장들은 곁들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日本語訳 ]
これまで幾編かのアルバムの紹介文を書いてきました。
今回は形のない音楽を何とか文字に言い表してみようと5つの長い告白を書き記すことにします。
この文章は、怪物と鳥と蝶へとつながる変貌と再誕生、そして自分自身の理解についての記録です。
五編の文章は、各章ごと別々に読んでも問題なく、続けて読むときは叙事の構造をより深く感じられるように構成しました。
この紹介文は、歌を聴く前に、歌の中により深く入り込む通路のような役割をしてくれるだろうと思います。
ですが、一行も読まなくても全く構いません。
良い芸術は説明を必要とせず、下の文章は添え物に過ぎない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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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처연하지만 아름답고 온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여 세상을 더 깊은 시선으로 꿰뚫어 보게 될 때, 부조리와 무의미에 대한 한자락 의심도 지펴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허무와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더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것으로 개인의 적막을 메운다. 그리하여 결국 희망적 공상이 깃들 자리마저 사라진다. 우리는 이야기에 파묻혀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당신이 노래를 통로 삼아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노래는 길이 보이지 않는 풍랑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방이 막힌 벽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당신이 노래라는 형식을 취한 이야기를 통해 당신 자신에게서 더 멀어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을 열고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직접 만지고 느끼고 헤아려 보길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는 계단이 되어줄 수도 있다. 우리 안의 여러 층위로 더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칸칸이 쌓아 올려져 있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저 깊은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그런 계단처럼 말이다.
신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심원한 곳에 있는 어두운 존재와 마주한 후에,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덤벼든 싸움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결말이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적확한 승리나 완전한 패배란 현실의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 개념과 같으므로,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환상을 기꺼워하고 그것에서 삶을 위안하며, 때로는 삶을 모방하기도 한다.
현대의 우리는 서로의 얼굴 속에서 매일 시지프(Sisyphus)를 본다.
우리는 이 격변하는 시대에 영원히 붙잡힌 채로 매 분, 매 초마다 생성되는 허무를 산꼭대기를 향해 밀어 올리고 있다.
[환상소곡집]은 내가 음악가로서 자립을 시도하며 태어난 앨범이다.
만약 이 앨범의 이야기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연작으로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환상소곡집]부터 심규선은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서서히 견지하게 되었다.
누가 지금의 심규선을 만들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탓을 당신에게 돌리고 싶다.
심규선을 사랑해 준 당신이 바로 '심규선'이라는 뮤지션의 탄생과 성장에 가장 책임 있는 사람,
심규선의 모든 작품에 대한 공동 창조자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 日本語訳 ]
1. 物語
人々は、誰もが物語を必要としている。物悲しくも美しく、心がすっかり魅了されるほど強烈な物語のことだ。そんな物語に没入して、この世をより深い視線で見通せるようになると、不条理や無意味に対する小さな疑いも見極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私たちは、虚しさに対峙するためにより多くの物語を探しさまよい、より断片化した物語を無慈悲に注ぎ込むことで個人の寂寞を埋める。
私はあなたの物語を聴くのが好きだ。どのような話も好きだが、その中でもあなたが歌を通して、自らの内面と向かい合うようになったという物語が特に好きだ。
歌は、道の見えない嵐の中で羅針盤となってくれたり、時には四方が閉ざされた壁から忽然と現れる扉となったりもする。
私は、あなたが歌という形式を取った物語を通してあなた自身から遠ざかることを望まない。むしろ、扉を開き、深いところまで降りて行き、その中にあるものに直接触れ、感じ、思いを馳せることを望んでいる。
その意味では、歌は階段となってくれることもある。私たちの心の中のいろいろな層位へ、より容易に速く到達できるように所々に積み上げられている、底知れぬほど深い深部へ際限なく続いている、そんな階段のように。
神話の中では、主人公が深遠なる場所にいる闇の存在と出会った後に、命を落とすことも厭わず覚悟して挑んだ闘いに輝かしい勝利を収めたという結末が描かれたりする。
しかし、適確な勝利や完全な敗北というものは、現実の生活の中には存在しない幻想の中の概念のようなものなので、私たちは大人になっても幻想を喜ばしく思い、それによって人生を癒やしたり、時には人生を模倣しようとしたりもする。
現代の私たちは、互いの顔の中に、日々、シシュフォス(Sisyphus)*1を見ている。
私たちは、この激変する時代に永遠に捉えられたまま、毎分毎秒ごとに生成される虚無を山頂に向けて押し上げている。
[幻想小曲集]は、私が音楽家として自立を試みて生まれたアルバムである。
もし、このアルバムの物語が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なら、連作として続くことはなかっただろう。[幻想小曲集]からシム・ギュソンは、音楽家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徐々に堅持するようになった。
誰が今のシム・ギュソンをつくったのか、と問うならば、私はそれをあなたのせいにしたい。
シム・ギュソンを愛してくれたあなたが、まさに「 シム・ギュソン」というミュージシャンの誕生と成長に最も責任ある人、 シム・ギュソンのすべての作品について、共同創作者であると言えるからだ。
*1シシュフォス(Sisyphus) …ギリシャ神話の登場人物。神々を欺いた罪により、永遠に巨石を山頂に押し上げる徒労に苛まれる罰を受け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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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괴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긍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매체를 통해 듣고 보아온 닳고 닳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를 '영웅'으로, 악마를 '괴물'로 바꿔 말하면 어떤 사람은 어색한 기분을, 또 어떤 이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라는 단어는 범죄자와 천재성을 지칭할 때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에서 모두 통용된다. 신기한 일이다. 괴물 같은 신인, 괴물 같은 재능, 괴물 같은 집중력, 괴물이 되어버린 누군가.
외면하고 싶을 만큼의 추악함과 찬란하게 빛나는 천재성을 수식하는 단어가 공통될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천재의 천부적인 재능이나 범죄자의 끝없는 악의 양쪽 모두가, 범인(凡人)인 우리들에게는 별반 다를 바 없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괴물'이라는 말이 혐오가 아닌 찬사의 의미로 쓰일 때는 반드시 그 표현 안에 강력함과 탁월한 힘을 내재한다. 섬세함이나 선량함 같은 부드러운 힘이 아니라, 집요함이나 놀라움,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은 충격적인 어떤 힘을 포함하는 것이다. 마치 괴물 같은! 마치 괴물 같은!
내 생각에 우리 모두의 안에는 천사와 악마도 있지만, 더 극렬히 대치되는 형태인 영웅과 괴물도 존재하는 듯하다. 천사와 악마라는 표현은 너무 오랫동안 인간 내면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수면 위와 수면 아래처럼 모래알갱이 하나만큼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서로 결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세계. 성질과 층위는 다르나 이미 하나의 본체인 것.
그러나 내 느낌에 영웅과 괴물은 조금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이는 데 성공하거나, 적어도 죽이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의 존재 이유가 흐려져 보일 만큼 대치적인 관계에 놓여져 있다. 천사와 악마는 함께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영웅과 괴물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함께 존립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나는 내면의 광산을 파헤쳐 무언가 캐내 올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로잡은 이 이미지에 푹 빠진 채로 여러 계절 동안 '괴물'이라는 주제에 깊이 침잠하였다.
괴물은 누구인가? 내가 이 주제를 창작적 관점으로 데려오자마자, 즉시 신화 속의 영웅 대신 괴물에 더욱 강하게 매료되었다. 그러자 나의 관점 또한 숭배받아 마땅한 영웅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그 주변 배경까지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특히 인간성을 지닌 괴물들을 탐구하였다. 괴물은 신들과 반신반인인 영웅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반드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괴물은 강제로 부여받은 지위를 벗어날 능력을 스스로 갖춘다. 괴물은 늘 불공정한 싸움을 하며 영웅처럼 부활하거나 절대자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신화적 괴물의 특성에서 영웅보다 더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신에게 선택받은 자가 아니므로, 살아남은—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일면 괴물의 면모가 있을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일생의 업적을 잘 포장해 영웅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 성공한 괴물도 있고, 당대에는 괴물이나 그보다 더 부정한 존재로 인식되어 지독한 형벌을 피하지 못했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영웅적인 인물로 재평가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물론 사람은 영웅도 괴물도 천사도 악마도 아니고, 만물의 영장도, 그렇다고 짐승도 아니며 더더구나 신도, 노예도 아닌 그저 하나의 종(種)일 뿐이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형용할 수 있는 한계선 안쪽에 놓인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의 생애는 장엄한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되기 위해 영웅심과 괴물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어느 시기 나는 내가 괴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 이미지는 너무 강렬해서 한동안 내 거울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싫어했고, 급기야는 내가 미움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목표한 바를 이루어내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살았다. 결과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기본적인 생활이나 안위도 돌보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괴물처럼 무자비하고 잔인했으며, 냉정하고 엄혹한 판단 기준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수도 없이 생채기를 입혔다. 목표는 달성되었고 결과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자기혐오와 분노 또한 온 전신에 독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성취에 중독되었고 통제력을 잃었다. 많은 것을 얻은 대신 스스로를 일부 잃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나는 나의 괴물과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의 '괴물성'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법이나, 나를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영웅적 면모가 발휘되어 내면의 괴물을 한 칼에 물리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을 자기 스스로 구원해야만 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본다. 나는 괴물이라고 치부하며 '내가 생각하는 나'와 분리하려고 애쓰던 사나운 존재 역시 나의 일부이며, 그 역시 깊은 존중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불행한 일에 넘어지고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을 때, 갖은 고비들과 낭떠러지에서 나를 지켜준 최후의 힘은 바로 그 괴물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나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일을 결국 해내게 하고, 아름다움과 진실성 같은 가치들에 더욱 깊이 탐닉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 괴물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단 한순간도 내가 되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의 이름은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으며, 혈육이나 친구나 심지어 배우자조차 알지 못한다. 당신이 자신의 괴물과 대면하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 괴물은 상상처럼 추하거나 혐오스럽거나 그렇게 사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을 꼭 닮은 당신의 다른 존재, 모든 외부의 고통으로부터 핵심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보호자, 그림자와 페르소나, 우리 얼굴의 또 다른 반대쪽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을 어쩌면 기꺼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격변하는 시대에서, 생존자로서의 현대인이 요구받는 영웅심이다.
괴물은 착하고 순종적이지 않아도 된다. 괴물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설정하며, 누군가의 위력이나 기대에 맞추어 삶의 방향을 재고하지 않는다. 누구도 괴물에게 규칙을 강요할 수 없다. 괴물은 자신의 자아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괴물은 죽음조차 겁내지 않는다. 괴물은 보물이나 명예를 노린 약탈자들이 걸어오는 싸움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괴물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운다. 나는 때때로 영웅처럼 생각하고 괴물처럼 행동한다. 혹은 그 반대일 때도 있으며, 둘은 겨루기를 하듯 언제나 내 안에서 엎치락뒤치락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이러한 길고 지루한 부연 설명들이 아무런 쓸모나 소용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궤변조차 소중히 여기며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거기 있음을 알기에 그를 위해 쓴다. 그저 당신이 당신 안에 있는, 당신보다 훨씬 강력하고 거대한 존재와 대화하는 일에 이 음악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日本語訳 ]
2. 怪物
「私たちすべての人の心には天使と悪魔がいる」と言えば、人々は容易く首肯する。幼い頃から数多くの媒体を通して、見聞きしてきた使い古された表現だからだ。しかし、天使を「英雄」に、悪魔を「怪物」に言い換えると、ある人は違和感を覚え、またある人は拒否感を感じるかもしれない。私たちの社会では、怪物という単語は、犯罪者と天才という相反するふたつの意味で通用する。不思議なことだ。怪物のような詩人、怪物のような才能、怪物のような集中力、怪物となってしまった誰か…。
顔を背けたくなるほどの醜悪さと眩く輝く天賦の才を修飾する単語が共通している理由は一体何なのだろうか?天才の天賦的な才能や犯罪者の極まりない悪の両方ともが、凡人である私たちには、「簡単には理解できないもの」という点でとてもよく似ているか、ほとんど同じように感じられる。しかし、「怪物」という言葉が嫌悪ではなく賛辞として使われるとき、必ずその表現の中に強力さと卓越した力が内在する。繊細さや善良さのような柔らかい力ではなく、執拗さや驚愕、一般的な範疇を越えた衝撃的な力を含んでいるのだ。「まるで怪物のようだ!」「まるで化け物のようだ!」というように。
私が思うに、私たちすべての人の中には、天使も悪魔もいるけれど、さらに激しく対峙する形態である英雄と怪物も存在する。天使と悪魔という表現は、非常に長い間、人間の内面を象徴する表現として使われてきたから、まるで水面の上と下のように砂粒ひとつほどの隙間もなく完璧に結着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到底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一つの世界。性質と層位は異なるがすでに一つの本体なのだ。
しかし、私の感覚では英雄と怪物はちょっと違う。一方が他方を殺すのに成功したり、少なくとも殺そうとしなければ、両方ともその存在理由が薄れて見えるほど対峙した関係に置かれている。天使と悪魔は共存するのが当然のように感じられるが、英雄と怪物は互いに必要としながらも共に存立し得ないという感じだ。私は、内面の鉱山を掘り起こして何かを掘り出すことを職業としている人間なので、どうしようもなく私を捉えるこのイメージにどっぷりと浸かったまま、いくつもの季節に渡って「怪物」というテーマに深く沈潜した。
怪物とは誰のことか?私がこのテーマを創作的観点で引っ張り出してくると、すぐに神話の中の英雄のほうではなく、怪物の方により強く魅了されてしまった。そして、私の関心はまた崇拝されて然るべき英雄的行為に局限されず、その周辺や背景にまで範囲を広げていった。特に、人間性を持った怪物たちを探求した。怪物は、神々や半神半人の英雄たちを脅かすほどに剛力だが、必ず致命的な弱点を持っている。怪物は、強制的に与えられた地位を抜け出す能力を自ら持っている。怪物は、常に不公正な戦いを強いられ、英雄のように復活したり、絶対者の決定的な助け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私は、このような神話的な怪物の特性において、英雄よりも強い同質性を感じる。私たち誰もが神託を得た者ではない故に、生き残り、生きていく私たちすべてには、その一面に怪物の面貌が備わっていると言えるだろう。
歴史を紐解けば、人生の業績をきれいに飾り、英雄的に見えることに成功した怪物もいれば、当代には怪物かそれよりも不浄な存在と認識され重い刑罰を免れ得なかったが、時代が移りゆき、英雄的な人物として再評価される事例も多く存在する。もちろん、人は英雄でも怪物でも天使でも悪魔でもなく、万物の霊長などでも、かといって単なる獣でもなく、況んや神でも奴隷でもない、ただひとつの種に過ぎないのだが。結局、私たちは、私たちが形容し得る限界線の中に置かれたすべてのものであり、すべてのものになることができ、すべてのものであらねばならない。人間の生涯は、荘厳な一篇の物語として完成されるために、英雄心と怪物性を同時に要求する。
ある時期、私は自分が怪物のようだと感じたことがある。そのイメージは、あまりに強烈で、暫くの間、私の鏡の中から消えなかった。私は自分を嫌い、挙げ句には自分が憎まれて当然の存在だと考えるに至った。私は、目標とするところを成し遂げるために、周辺のあらゆるものを犠牲にして生きていた。結果のためならば、自らの基本的な生活や安定も顧みなかった。私は時折、怪物のように無慈悲で残忍だったし、冷たく厳しい判断基準で愛する人々と自分を幾度となく傷つけた。目標は達成され、結果も美しかった。しかし、自己嫌悪と怒りもまた全身に毒のように広がっていた。私は、成就の虜となりコントロールを失っていた。多くのものを得た代わりに自分自身を一部失った。
どうすればよいのか?もうこれ以上、逃げ場がなくなると、私は自分の怪物と長い対話をし始めた。私は、自分の“怪物性”について理解したかった。誰も傷つけずに自分を守る方法や、自分を傷つけずに相手を守る方法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絶体絶命の危機に英雄的な面貌が発揮されて、内面の怪物を一刀のもとに退けてくれることを望んだが、そんなことは起こらない。誰もが自分を自分で救うしかない。
私が深淵を覗くとき、深淵もまた私を見ている*2。私は、怪物だとみなして「私が考える私」と無理に分離させようとしていたおぞましい存在もやはり私の一部であり、その私も深く尊重され、愛される資格があることに気がついた。なぜならば、私が不幸な出来事に倒れ、最悪の状況に陥っていた時、数知れず峠や崖から私を守ってくれた最後の力は、まさにその怪物から発せられたものであったからだ。怪物は、私の能力をずっと越えたことを結局やり遂げさせ、美しさや真実性のような価値により深く耽溺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道標となってくれた。その怪物でなかったなら、私は、恐らくほんの一時でさえ私に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だろう。
私たちには、皆、自分だけの怪物がいる。その怪物の名は、ただあなただけが知り得るもので、家族や友だちや、さらには配偶者でさえ知ることはできない。あなたが自分の怪物と対面することに成功したなら、その怪物は、想像したように醜かったり、嫌悪すべきものだったり、そんなに邪悪でもないだろうと私は考える。あなたにそっくりなあなたのもう一つの存在、あらゆる外部の苦痛から核心を守るために作り出した私たち自身の守護者、影でありペルソナであり、私たちが持つ反対側のもう一つの顔に過ぎない。だから、私たちは自分の深淵を覗くことをある意味、喜ぶべきなのだ。それがまさに激変する時代において、生存者としての現代人に要求される英雄心なのだ。
怪物は善良で従順でなくともよい。怪物は自ら存在の理由を設定したり、誰かの圧力や期待に合わせて生きる方向を考え直したりしない。怪物は、死さえも恐れない。怪物は、財宝や名誉を狙う略奪者たちが仕掛けてくる戦いから決して逃げ出したりしない。怪物は、いつも命がけで戦う。私は、時々、英雄のように考え、怪物のように行動する。あるいはその反対の時もあり、その二つは競い合うようにいつも私の中で激しく揉み合う。これは嬉しい気持ちで告白するのだが、私は、実は、このような長く退屈な補足説明は、何の使い道も意味もないだろうと思っている。しかし、このような詭弁でさえ、大切に感じて関心を持ってくれる誰かがそこに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ゆえに、その人のために書く。私の音楽が、ただあなたがあなたの中にいる、あなたよりもずっと強力で巨大な存在と対話することの一助になってくれることを望んでいる。
*2「私が深淵を覗くとき、深淵もまた私を見ている」
哲学者フリードリヒ・ニーチェの言葉。ニーチェはその著書『善悪の彼岸』の中で「怪物と戦う者は、その過程で自分自身が怪物にならないよう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深淵をのぞくとき、深淵もまたこちらをのぞいているのだ。」と述べている。『善悪の彼岸』ちくま学芸文庫 適菜収訳 2021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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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
저는 자주 알을 깨고 나오는 새를 상상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상상이 잘 통할 때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 마흔을 앞둔 나이에 이르게 되니,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미지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꼭 맞아떨어지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여전히 태어나려는 충동은 남아 있는데, 삶을 겪으며 체감한 성장의 고통이나 그 실감이 어린 날의 환상에 찬물을 퍼붓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갓 태어나는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상상에 이미 낡고 지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대부터 20대 언저리까지는 알을 깨고 태어나는 작은 새를 자신의 모습에 빗대어 생각하기가 쉬웠습니다. 대학생이 되는 것, 성인이 되는 것, 사회에 첫발을 내미는 것, 고향을 떠나 상경하는 것, 자취를 시작하는 것, 해외나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처음이라는 단어와 결부되는 모든 경험들을 맞이하는 것. 그런 일들과 사건들이 계속해서 쉼 없이 이어지는 시기였으니까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모든 것들이 태어나 처음 보는 세상,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겪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정말로 알을 깨고 나오려 애쓰는 작은 새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알을 다 깨지 못했고 날개도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하지만 실제로 알을 깨고 나온 직후에 곧바로 날아가는 새는 없지요. 그런 상상은 그저 동화 같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피나는 노력으로 온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알껍질을 다 떼어내는 일에 겨우 성공해도,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법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확실히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을 깨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즉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10대나 20대의 시간들을 보내왔지요. 성인으로서의 삶에 내던져지고 나면, 현실과 상상 사이의 괴리, 그 둘 사이에 극심한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께서도 이 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은 태어나는 새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새의 창조자에 의해 선택권 없이 강제로 주어진 환경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 알 속에서 양육되고 보호받지만, 우리가 드디어 충분히 자라 세상에 막 던져졌을 때는 보호막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태동기 동안 나와 내 알껍질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얼룩덜룩한 무늬의 껍질을 원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차가운 둥지, 너무 좁은 알 속에서 오래 고통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욱씬거리는 통증이나 발작성 불안을 안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의 어느 날 나 자신을 돌아보다가, 제가 심각한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도 칼같이 거절했고, 늘 진지하게 고민한 결론인 체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도망치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처음 세상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저도 다른 많은 도전하는 사람들처럼 트라우마와 쇼크를 얻고 상처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용기를 내 연거푸 다시 도전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요. 그래서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도 결국에는 똑같은 상처를 한 번 더 입는 일에 그치고 말 거라는 확신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그 도전이 아니라도 저한테는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들이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핑계를 합리화하며 이리저리로 피해 다니기가 더 쉬웠지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저는 무겁고 깊어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가볍고 넓게 펼쳐지지는 못했습니다. 불안을 느낄수록 더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급기야는 아무도 없는 곳까지 파내려가고 말았어요.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제가 서 있는 곳은 사방이 어둠에 둘러싸인 갱도 같았습니다. 소리쳐서 동료를 불러봐도 내 목소리의 메아리만 돌아올 뿐,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완전한 고립감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계속 파내려갈 수도 없고, 너무 지쳐서 다시 기어올라갈 수도 없는.
저는 그렇게 고립감과 두려움에 압도될 때마다 스스로 날개가 있는 무엇이 되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이 고립은 주변의 환경이 나에게 억지로 또는 강제로 떠넘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알껍질을 어떻게 깨야 하지?’라는 고민에 아무리 부딪혀 보아도, 나의 작은 손으로는 이렇게 두꺼운 벽을 깰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믿는 것만 진정으로 믿을 수 있지요. 아무리 입에 발린 멋진 말들로 끊임없이 자신을 긍정해도, 현실이 괴롭다면 결국 자기부정의 감옥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돌이켜보니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실 이미 알껍질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내게 강제로 부여하거나 우연히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초한 고립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집도 대단한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원석을 캐냈고, 심지어 그걸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음악 역시도 아직 반짝이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빛이 바래지는 순간 제가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저는 지독한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인내하고 버티는 쪽을 선택하여서, 여전히 바깥세계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고 외부에서 온갖 좋고 나쁜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거나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었지요. 그때 갇힌 알껍질과 암흑 같은 갱도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새로운 관점의 자기 이해가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 스스로 택한 고립, 스스로 정한 방식이기 때문에 마치 애벌레들이 스스로를 고치로 감싸는 것과 같다는 상상이 제 안에서 형태를 그리며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또 다른 존재로의 변모를 겪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요.
[ 日本語訳 ]
3. 鳥
私は、よく卵の殻を破って出てくる鳥のことを想像しました。若い頃は、そんな想像をよくするものですね。でも、もう四十路を目前にしては、卵を破って出てくる鳥のイメージは、自分に似つかわしい感覚としては受け入れられないですね。いまだに生まれ出ようとする衝動は残っているけれど、生きることを通して体感した成長の苦痛やその実感は、若い日の幻想に冷水を浴びせる気分とでもいいましょうか。だから、生まれたばかりの美しい存在に対する想像をすでに古びて疲れ切っている自分の姿に当てはめることがより難しくなっ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
十代から二十代くらいまでは、卵を破って生まれてくる小鳥を自分の姿になぞらえて考えやすかったと思います。大学生になること、成人になること、社会に初めて足を踏み入れること、故郷を離れ上京すること、一人暮らしを始めること、海外やとても遠いところに旅に出ること、初めてという言葉と一緒になったすべての経験を迎え入れること、そんな事々が休む間もなく続く時期だったからでしょう。どこに行って何をしても、すべてのことが生まれて初めてという世界、初めて会う人々、初めて経験することばかりだったので、私は自分が本当に卵を破って出てこようと奮闘している小鳥だと容易に想像できたのでした。まだ、卵をすべて破りきれず、翼も完成していなかったから、もう少しだけ待てば、悠々と飛んでいけるのだろうと信じながら。ですが、実際に卵を破って出てきた直後にすぐに飛び立つ鳥なんていませんよね。そんな想像は、あくまでも童話のような幻想に過ぎません。私たちが血の滲む努力をして、全身にべっとりとくっついた卵の殻を剥がすことに何とか成功しても、自由自在に飛行する方法を覚えるまでは、確実にもっと長い時間がかかります。でも、私たちは卵の殻を破ることに成功すれば、すぐに飛び立つことができるだろうと勘違いして、十代から二十代の時間を送ってきました。成人としての生活に投げ出されてしまったら、現実と想像、その二つの乖離に激しい衝突が起こるものです。この文章を読んでいらっしゃる多くの方はその混乱が何を意味しているか、正しく理解されることと思います。
卵は、生まれる鳥が自ら作ったたものではなく、その鳥の創造者によって選択権なく、強制的に与えられた環境のようなものです。始めはその殻の中で養育され保護されますが、私たちがついに十分に育ち、この世界に投げ出された時、保護膜をなくしたような気分になったりもします。場合によっては、胎動期の間ずっと自分と卵の殻がよい関係を維持できないというようなことも起こります。私は、こんなにまだら模様の殻なんて望んでなかったとか、小さすぎる巣、狭すぎる卵の中で長い間苦痛を与えられたために、この世に生まれる前からずきずきする痛みや発作性の不安を抱いている場合もあります。
私は、三十代後半のある日、私自身を振り返って、自分が深刻な孤立状態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きました。新しい機会が与えられても、ぴしゃりと拒絶し、いつも真摯に悩んだ結論である振りをしていましたが、実際は怖くて逃げてばかりいました。私がこの世界に足を踏み入れたとき、他の多くの挑戦する人々のようにトラウマとショックを受け、傷つけられ、蔑まれました。時間が経ち、勇気を出して、もう一度挑戦したときも状況は大きく変わっていませんでした。そして、さらにもう一度、もう一度と挑戦を繰り返しても同じような傷を負ってしまうだけだと確信して、固まってしまいました。その挑戦でなくとも、私にはやり遂げなければならない重要なことがいつも山のように積み重なっていたので、言い訳を合理化して、あちこちへと逃げ回りやすかったのです。
そんなふうに過ごしていると、私は、重厚に、深めることには成功したけれど、軽く広く伸びていく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不安を感じるほど、より必死に努力したために、ついには誰もいないところまで掘り進んでしまいました。辺りには誰もおらず、私が立っているところは、四方が闇に包まれた坑内のようでした。声を出して仲間を呼んでも、私の声がこだまするだけで、どこからどうやって出られるか分からないまま、完全に孤立感に閉ざされてしまったのです。これ以上、掘り進めることもできず、あまりにも疲れ切って再び這い上がることもできず。
私は、そんなふうに孤立感や恐怖に圧倒されるたびに、自分で翼がある何かになる場面を想像しました。この孤立は、周辺の環境が私に無理矢理あるいは強制的に押しつけたのではないので、他の誰かを恨む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この卵の殻、どうやって破ればいい?」という悩みにどんなにぶつかっても、私の小さな手ではこんなに分厚い壁をやぶることはできないように思われました。人は、自ら信じるものだけを真実に信じられるでしょう。口に塗られた、どんなに素敵な言葉で自分を肯定しても、現実が辛ければ、結局は自己否定の監獄に閉じ込め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振り返ってみると、これは私が自分でつくりだした状況だという点で、すでに卵の殻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誰かが私に強制して付与したり、偶然与えられたものではなく、自分で招いた孤立だったのですから。ですが、とても頑固な私は自分の選択を後悔してはいません。その暗闇の中で数多くの原石を掘り出し、ついにはそれを多くの人々と分かち合いもしましたから。私の音楽もまたまだ輝く生命力を失っていないと言うことができます。その光が褪せてしまう瞬間、私自身が真っ先に気づく筈だから。こうして、私は激しい孤立感を感じながらも耐え抜くほうを選び、依然として外の世界を透明な目で眺めること、外部からあらゆる善悪混じった影響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に気がつきました。誰かの声を聴き取ったり、私がまずその人に言葉をかける、ということができたのです。その時、閉じ込められていた卵の殻と暗黒のような坑道のイメージが消えてゆき、新しい観点で自己理解が私に近づき始めました。
私が自らつくったもの、自ら選んだ孤立、自ら定めたやり方のゆえに、まるで幼虫が自分を繭で包むようなものだという想像が私の中で形を成して広がり始めました。ある意味、私はもう一つの存在への変貌を遂げていくところ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これは、永遠に固定化した状態ではなく、容易くはないけれど、必ず経なければならない過程なのかも知れないと。
日本語訳 >>
4. 나비
셀 수 없이 무한한 잎사귀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두 맛보고 먹어치우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할 방법을 찾아냅시다.
입에 쓸까 봐, 독이 있을까 봐 맛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을 끌어내리는 것 대신,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받아들이세요.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똑같은 잎사귀를 갉아먹는 일이 재미없거나, 이제 충분해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스스로 고치를 만드세요.
제가 언제나 말하듯, '그래도 됩니다.'
고립감에 휩싸이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 스스로를 가두는 시간을 충분히, 그리고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져도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할 때에 다다른 것일지 몰라요.
여기까지 애쓰며 견뎌온 당신이 이제 정말로, 거의 다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치 속에 자신을 완전히 가두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었던 나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봅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의 심연이 알아챌 때까지.
나의 심연 속에 있는 진정한 무언가가 드디어 나와 눈을 맞추고 내게 화답할 때까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내 안에 있는 괴물을 받아들입시다.
나의 놀라운 ‘괴물성’을 해방합시다.
대단히 강인하고 초월적이며 내가 되어야만 하는 나를 드디어 발견합시다.
나의 커져버린 존재를 감당하지 못한 좁은 고치가 찢어져버린 후에도, 얼마쯤 더 고요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줍시다.
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나비는 날개가 펼쳐지는 즉시 날아갑니다.
누가 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이에요.
아직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의 심연에 침잠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애벌레들은, 날아가는 나비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이종(異種), 처음 보는 신기한 존재, 하지만 아름다운 ‘괴물’이라고요.
어린 애벌레들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자신도 곧 나비가 되어, 태어난 나무라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수천 수만 송이의 꽃 군락이 펼쳐진 너른 들판을 날며 놀라운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서사와 이미지에 착안하여, 환상소곡집 op.3의 제목을 〈Monster〉라 명명했습니다.
모든 곡에 괴물에 대한 상징과 암시를 배치해두었고, 듣는 이께서 보물찾기를 하듯 그 의미들을 찾아내고 맛보아 주시기를 희망하며 뜨겁게 쓰고, 전심으로 불렀습니다.
변모,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의 재탄생.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나비로 두 번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어떤 나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비일 수 없고, 자신을 고치에 가두는 시간 없이는 절대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선택한 고난을 통해 진정한 완결적 존재를 스스로 완성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모두 일생 동안 두 번 태어납니다.
한 번은 타인에 의해, 한 번은 자기 자신에 의해.
[ 日本語訳 ]
4. 蝶
数え切れない無数の葉っぱが私たちの目の前に揺れています。
皆、味わい、平らげながら、自分の口に合うものと成長に必要な栄養分を摂取する方法を探し出しましょう。食べたら苦いんじゃないか、毒があるんじゃないかと味わうことを恐れてはなりません。
あなたを引き下ろすものの代わりに、あなたを引き上げるものを受け入れてください。
そうしていると、それ以上同じ葉っぱばかりをむさぼることが楽しくなくなったり、もう十分だからこれ以上必要ない、と感じる日が来るでしょう。
その時は、自ら繭を作りましょう。
私がいつも言うように「それしてもいいのです」。
孤立感に包まれて、完全に一人になって、自らを閉じ込める時間を十分に、そして願う分だけどれだけ持ってもいいのです。
もしかしたら、私たちは今や本当にその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にさしかかっ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ここまで必死に耐えてきたあなたは、今本当に、ほとんど辿り着い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
繭の中で自分を完全に閉じ込めるのに成功したなら、その時はもう一度観察することのなかった自分の深淵を深く覗いてみましょう。
私が深淵を覗いているということを私の深淵が気づくまで。
私の深淵の中にある真正たる何かがついに私と目を合わせ私に応える時まで。
恐れないで大胆に私の中にある怪物を受け入れましょう。
私の驚くべき“怪物性”を解放しましょう。
非常に強靱で超越的な、私が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私をついに発見しましょう。
私の大きく成長した存在を収めきれなくなった狭い繭が破られてしまった後も、もうしばらくは、静かにその場で私を待ってあげましょう。
その事件が起きる瞬間を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
蝶は、翅が広がるとすぐに飛び立ちます。
まだ繭の中に自分を閉じ込め、自分の深淵に沈潜する段階に至らない幼虫たちは、飛び立つ蝶を見てこう思うでしょう。
自分とは完全に違う「異種」、初めて見る不思議な存在、でも美しい「怪物」だと。
幼い幼虫たちはまだ分からないのです。
自分もすぐに蝶になって、生まれた木という狭い世界を抜け出し、数千数万という花の群落がひろがる広い野原を飛び回り、驚くべき世界を探検するようになるという事実を。
このような叙事とイメージに着眼して、幻想小曲集 op.3のタイトルを<Monster>と命名しました。すべての曲に怪物についての象徴と暗示を配置し、聴く方々が宝探しをするようにそれらの意味を探しだし、味わってくださることを願いつつ、熱く書き、全身で歌いました。
変貌、そして新しい存在の再誕生。
蝶は、卵から幼虫に、幼虫から蝶へ、二度生まれる存在です。
どんな蝶も生まれた瞬間から蝶にはなり得ず、自身を繭に閉じ込める時間なくしては、絶対に蝶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
自然は、自ら選択した苦難を通して真正かつ完結する存在を自ら完成させます。
私たちも同じです。
人は皆、一生の間、二度生まれるのです。
一度は他人によって、もう一度は自分自身によって。
日本語訳 >>
5. 감사의 말
[환상소곡집]이라는 세계관을 3부작의 형태로 완결합니다.
이 세계 속에서 당신과 함께 모험하고 춤추고, 눈물 흘릴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제가 또 다른 모험을 시작하더라도, 우리 여정의 놀라운 기록은 언제나 이 앨범들 속에 영원히 새겨진 채 반짝일 것입니다.
[환상소곡집]은 단지 음악과 가삿말의 모음이 아니라, 당신에게 헌정된 ‘한 인간의 삶’입니다.
아낌없이 누려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것으로 이미 저에게 충분합니다.
이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면이 부족해 크레딧으로만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고 송구합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세 존재의 각별한 헌신이 있어, 열두 곡의 나비들이 고치를 찢고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서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박현중님께,
놀라운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도전도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약한 글로나마 공언해드립니다.
삶에서는 이승남님께,
사랑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삶도 음악도 여기까지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임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께,
당신이 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존재가 당신으로 하여금 두 번 태어남을 경험했듯이,
나의 남은 삶 또한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5. 11. 11
당신의,
심규선
[ 日本語訳 ]
5. 感謝のことば
[幻想小曲集]という世界観を三部作という形で完結します。
この世界の中で、あなたと共に冒険し、踊り、涙を流すことができて、本当に幸せでした。
私が再び別の冒険を始めるとしても、私たちの旅程の驚くべき記録は、このアルバムの中にいつまでも永遠に刻まれ輝くでしょう。
[幻想小曲集]は、単に音楽と歌詞の集まりではなく、あなたに献呈する「一人の人間の生きざま」です。
惜しみなく享受してくださ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それで私にはもう十分なのです。
このアルバムを完成させるために数多くの方々に助けていただきました。
紙面が足りず、クレジットだけで感謝を表すしかないことが残念で、申し訳ありません。
深く感謝申し上げます。本当にお疲れさまでした。
特に、三人の存在の格別な献身があり、十二曲の蝶たちが繭を破って飛び立つことができました。
音楽においては、このアルバムのプロデューサーであるパク・ヒョンジュン様に、
驚くべきあなたにお会いできなかったなら、私の挑戦は続けられ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
つたない文章ですが公言いたします。
日々の生活においては、イ・スンナム様に、
愛するあなたとお会いできなかったなら、生活も音楽もここまで続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あろうことを
すべての人の前で告白いたします。
そして、今、この文章を読んでくださっているあなたに、
あなたが私のすべての物語の始まりでした。
私の存在があなたによって、二度生まれるということを経験したように、
私の残りの人生もまた、あなたに対する愛に帰結することができることを願っております。
2025.11.11
あなたの、
シム・ギュソン